역사논문

기씨(위만)조선의 서쪽 국경

무극신 2021. 8. 30. 05:35

이 번에 볼 논문은 연나라에서 한나라까지 고조선의 서쪽 국경과 중심지에 관한 논문이다.

 

제목 :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중심지와 서계의 변화

저자 : 박준형

출처 : 사학연구 108(2012.12.)

 

 

1. 사전 지식

 

 가. 지명 비정의 어려움

 

한국 역사학계가 정립한 고조선 상과 환단고기가 묘사하고 있는 고조선 상은 그 괴리가 너무 크다.

단군조선은 차지하더라도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기씨조선, 위만조선도 그러하다.

 

학계는 고조선은 단일 국가로 중심지가 이동되었을 수 있지만 최종 위만조선의 수도는 평양으로 본다.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은 고조선은 3국의 연방국가이며 그 중 위만조선의 수도는 평양이 아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학계가 틀렸다.

 

위만조선의 수도를 평양으로 보면 중국 기록과 맞지 않게 된다.

조선()이던 역계경이 진국으로 간 방향은 중국 사서에 따르면 동쪽이다.

학계는 한강 이남은 진국이 있었다고 보므로 사료가 틀렸다고 하면서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사료를 바꿔서 설명한다.

그러나 위만조선의 수도가 한반도에 있지 않다고 보면 사료는 잘못이 없게 된다.

 

위만조선의 수도가 평양이라면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전쟁 과정도 사리에 맞지 않게 된다.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공격한 이유는 흉노를 왼쪽에서 공격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학계는 이미 한나라가 요동을 점령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전쟁을 할 이유가 없게 된다.

요동을 한나라가 점령하고 있다면 위만조선과 흉노와의 연결은 어렵다.

그리고 위만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 북경에서 육군이 출발하는데 위만 조선의 군대와 만나는 데 2개월이 걸렸다. 평양이라면 행군 속도가 너무 빠르다.

 

기씨조선의 멸망은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의 난민 때문이었다.

진나라 혼란을 피해 위만조선에 온 난민을 관리하기 위해 위만을 등용했고 위만의 쿠테타로 기씨조선은 망하게 된 것이다.

위만조선의 수도가 평양이라면 난민이 한반도까지 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요하 너머 요양까지 연나라가 점령했고 진나라가 더 확장했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지만, 조나라 백성이 그 먼 조나라에서 한반도까지 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조나라 백성의 입장에선 한반도보다 흉노가 훨씬 더 가깝다.

 

한국사를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신라, 안라가 한반도의 신라, 가야가 아니고 현 일본 내에 있는 나라이듯이, 지리적으로 위치가 다르나 이름은 같은 것이 많다.

평양, 패수, 낙랑 등이 그러하다.

 

평양은 국가의 수도를 뜻한다. 패수도 고유 명사가 아닌 보통 명사로 보인다.

수도가 반드시 하나라는 가정도 버려야 한다.

발해의 5경과 같이 여러 곳에 수도를 둘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시간대에 패수와 평양이 여러 곳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중국 사서에서 등장하는 요동도 현재 사용되는 요하 동쪽으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중국인의 영토 개념이 확장되면서 요동도 확대된 영토 관념에 따라 이동하게 되었다.

 

고고학 유물로 국경을 정하려는 시도도 있는데 춘추전국시대에 고조선으로 망명한 외국인이 많다.

따라서 요동에 제나라 연나라 유물이 발견되어도 이 유물로 영역을 설정하면 안된다.

요동에 연나라 철기가 발견된다고 연나라가 점령하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학계는 기씨조선의 철기와 연나라 철기를 구별하지 못한다.

기준이 한반도 남부로 남하하였다고 하면서 연나라 철기가 전파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학계의 현주소이다.

기준의 남하로 철기가 한반도 남부에 보급되었다면 그 철기는 기씨조선의 철기이지 왜 연나라 철기라 하는가?

 

연나라와 기씨조선은 인접 국가로서 오랜 기간 전쟁하였다.

철기 기술이 상호 간에 전파되는 것은 당연하다.

명도전 출토 지역으로 연나라 영역을 설정하는 자도 있으나 대부분이 기씨조선의 영토로 주장되는 지역에서 출토되었으니 명도전은 기씨조선의 화폐라 할 것이다.

연나라의 지역인 북경 이남의 주요 도시인 보정시에서는 출토되지 않았다.

 

패수라는 강이름의 위치를 찾거나 고고학 유물로는 고조선의 중심지나 국경을 정하기 어렵다.

오직 역사적 사건의 상황 분석을 통해서만 고조선의 영역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중국 사서 등의 기록

 

연나라가 장군 진개를 보내 조선 서방을 공격하여 땅을 2천여리를 얻었고 만번한(滿番汗)으로 경계를 삼았다. 조선이 비로소 약해졌다(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위략 인용).

 

연나라도 장성을 쌓았는데 조양에서 양평까지였으며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군을 두어 ()를 막았다(사기 흉노열전).

 

연나라는 전성기 때 진번과 조선을 공격하여 ()를 축조하고 관리를 두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요동외요에 소속시켰다. 한나라는 거리가 멀어 지키기 어려워 요동의 옛날의 ()를 다시 수리하고 浿水(패수)로 경계를 삼아 ()에 속하게 하였다(사기 조선열전).

 

진나라가 천하를 병합하고 몽염으로 하여금 장성을 쌓게 하였는데 요동에 이르렀다. 이때 조선의 왕은 부()였는데 진나라의 습격을 두려워하여 진나라에 복속하였으나 조회는 하지 않았다(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위략 인용).

 

연왕 노관이 반란하고 흉노에 들어가자 만도 망명해 무리 천여명을 모으고 상투를 틀고 만이의 복장을 하고 동으로 달아나 ()를 나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옛 땅 상하장에 거주하였으며 점차 진번과 조선을 복속하고 옛 연나라 제나라 망명자들의 왕이 되었다. 왕검에 도읍하였다(사기 조선열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후 패수(沛水)를 넘어 조선을 멸망시켰다(염철론 주진편).

 

이를 정리하면 연나라를 기씨조선의 서쪽을 공격하여 많은 영토를 뺐은 다음 만번한이 국경이 되었고, 진나라 때는 더 전진하여 상하장에 요새를 세웠고, 한나라 때는 후퇴하여 패수가 국경선이 되었다.

진나라 때가 가장 동쪽에 있었고, 만번한과 패수의 원근은 확실하지 않다.

 

 

 

2. 논문의 주장

 

 가. 浿水(패수)는 혼하이다

 

  ① 전한기 효무황제기에서 遼水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패수 = 요수이다.

  ② 수경주에 대요수, 소요수가 있고 대요수는 요동 양평현 서쪽을 지난다고 하였고, 소요수는 서남으로 요양현을 지나 요수에 진입한다 했으니 대요수는 요하이고 소요수는 혼하이다.

  ③ 고고학적으로 연진장성의 동단이 요하선까지 나타나고 요동군의 치소가 양평(요양)이었던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패수를 대능하나 난하로 볼 수 없다.

  ④ 한서지리지 낙랑군 패수현조에 청천강으로 비정되는 浿水(패수)가 있고, 현도군 서개마현조에 마자수(馬訾水)는 서북으로 흘러 염난수(鹽難水)와 합류하고 또 서남으로 흘러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마자수는 압록강이고 염난수는 혼강이다. 패수가 압록강이라면 청천강의 패수와 동시대에 둘이 있게 된다.

 

 

 나. 심양에서 평양으로 고조선의 중심지가 옮겨졌다

 

  ① 만번한은 문현과 번한현의 연칭으로 문현은 평곽현 위인 개주 일대에 있었고, 번한현은 혼하 하류인 영주와 개주 사이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천산산맥 이서 지역으로 천산산맥으로 자연 경계를 삼은 것으로 알 수 있다.

 

  ② 진개의 공격이 만번한에서 멈춘 것은 고조선이 산동의 제나라와 연결될 수 있는 해상 교통의 거점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이 연과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산동의 제나라가 고조선을 끌여들였기 때문이다. 연소왕은 제나라를 정벌한 다음 고조선을 공격했던 것은 고조선과 제의 관계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③ 진번도 고조선과 함께 요동에서 서북한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이동된 진번의 위치는 황해도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④ 염철론 벌공편에서 연나라가 동호를 습격하여 천리를 넓히고 요동을 건너 조선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요동은 요수의 오기로 보인다. 즉 고조선은 요동에 있었으며 기원전 4세기 후기비파형동검문화에서 중심지는 심양이다. 심양이 요동군에 편입되었기 때문에 그 중심을 평양지역으로 옮길 수 밖애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⑤ 진개의 공격 대상에 동호와 조선이 모두 포함되었으므로 위략의 2천리 중 1천리는 동호에 1천리는 고조선에게 빼앗은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의 5군 중 요동군이 빼앗은 고조선 지역에 설치되었다. 대릉하 지역은 초기 세형동검문화가 존속하고 있던 지역이다. 고조선이 연에게 뺐긴 지역은 대릉하에서 천산산맥 이서 지역까지이다.

 

  ⑥ 천산산맥 이서 지역에 요동군이 설치된 이후 전국계 토광묘가 고르게 나타난다. 요동군 설치와 함께 전국계 문화가 완전히 이식된 것을 알 수 있다.

천산산맥 이동 지역은 석관묘, 적석묘와 같은 토착적인 묘제가 유지되면서 초기세형동검 문화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다. 고조선과 진나라와의 경계는 압록강이다.

 

  ① 위만이 머물렀던 진의 옛 땅이 고조선의 영토이므로 한나라 초기에 고조선이 다시 회복하였다.

 

  ② 천산산맥이 연나라와의 경계이므로 천산산맥 이동에서 진나라와의 경계를 찾을 수 밖에 없는데 청천강과 압록강으로 압축된다.

 

  ③ 진나라 화폐 반량전은 압록강 이북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따라서 고조선과 진나라와의 경계는 압록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비판

 

 

논문의 핵심은 양평이 현재 요양시라는 데 있다. 이 근거가 무너지면 논문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게 된다.

 

중국 사서 기록을 살펴보면 고조선과 연, , 한과의 국경선을 이해하는 핵심은 장성과 ()에 있다.

따라서 장성의 위치를 살피면 국경의 위치를 대강 알 수 있는 것이다.

 

연나라의 장성은 조양에서 양평까지이다. 조양은 장가구시로 통일되어 있다.

문제는 양평인데 우리 학계는 요양시를 주장한다.

요양시라면 장성의 길이가 어마어마하게 된다. 그리고 요양은 평지이다. 장성은 산성인데 평지까지 성을 쌓을 이유가 없다.

요양에서 발견되는 성을 중국 학계는 연나라 성이라 하고 있으나 이는 고조선의 성으로 봐야 한다.

요양, 심양 등이 고조선의 중심지라면 강을 경계로 하는 방어성을 당연하게 쌓았을 것이다.

 

위략에서 연나라에게 패하여 고조선이 쇠약해졌다고 평하였는데, 만약 양평이 요양이라면 고조선의 반격으로 다시 찾았을 것이다. 위략에 따르면 그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연나라가 장성을 쌓아 고조선의 공격이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요양 같은 평지성이라면 고조선의 반격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논문은 진개의 침입으로 심양에서 평양으로 중심지를 옮겼다고 하였으나 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서쪽 영토를 잃었다고만 했지 수도를 옮겼다는 기록이 없다.

진개의 승전은 연나라 국력이 강해서라기 보다 우연히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진개가 인질로 있으면서 적의 내실을 알았기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연나라는 소왕 이전에 제나라 등 다른 국가의 침공을 받으면서 거의 망할 지경까지 갔었다.

그런데 갑자기 국력이 강해질 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장가구시에서 요양시까지 장성을 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사마천 사기에 의하면 연나라는 장성을 쌓고 5군을 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양, 우북평은 북경 인근이다. 상곡은 장가구시 인근이므로 나머지 2군인 요동군과 요서군의 위치도 대강 정해진다. 난하를 경계로 요동군과 요서군으로 구분된 것이다.

따라서 양평은 노룡현 인근의 산성으로 봐야 한다.

 

북경 북쪽과 동쪽, 보정시 위쪽의 땅을 잃었다고 봐야 하므로 천진시, 당산시, 준화시, 천안시, 북경 창평구 등 알짜배기 땅을 잃었으니 위략에서 고조선이 쇠약해졌다는 평가가 맞는 것이다.

 

논문은 진번을 쳐서 천리를 물러나게 하고 조선을 공격한 기록에서 조선을 진번의 동쪽으로 보고 있으나, 연나라는 장가구시 위에서 동호를 쳐서 물러나게 한 것이고 조선은 동쪽으로 공격한 것이니, 진번은 조선의 서쪽이 아니다.

 

논문은 패수가 요수이고 요수가 요양시 서쪽을 지나니 요하라고 하고 있으나 이를 난하로 보고 위치를 비정해도 충분히 맞게 된다.

요수가 요동 같이 확장된 개념이라면 요수의 위치도 시대에 따라 바뀌게 된다.

물길의 방향만으로는 강을 특정하는 것은 어렵다.

 

논문은 연나라가 요하를 건너 조선을 공격했다 하면서 대능하에서 천산산맥이서까지 영토를 빼앗겼다고 하고 있으니 논리적 모순이다. 대능하는 요하 서쪽에 있으니까.

 

장성이 위치를 파악하는 핵심인 점, 연나라 5군의 위치 등을 볼 때 패수는 난하가 된다.

진나라와는 전면전이 아닌 장성 너머에서 국지전이 있었을 것이고 상하장이라는 곳을 일시적으로 잃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식적으로 고조선과 진나라 간 국경 조약이 맺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고조선은 상하장을 다시 찾았으며 진한 교체기로 생각된다.

한나라는 난하 너머까지 관리하기 어려워 난하를 국경선으로 하기로 기씨조선과 타협했을 것이다.

 

진나라가 넘은 패수(沛水)는 상하장과 가까운 곳에 있다.

따라서 浿水(패수)와 같다고 단정할 수 없다. 沛水는 조백하가 아닐까?

 

수경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예를 들어 논문은 마자수를 압록강으로 보고 있으나 시라무룬하로 생각된다.

서안평도 여러 곳에서 보인다. 

역사적 상황에 따른 맥락없이 한 곳으로만 단정해서는 안된다.

 

한나라의 요동군과 연나라의 요동군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위만조선을 점령한 후 한나라의 요동 관념은 더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한서지리지로 연나라 때의 강역을 논하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

 

결론을 맺자.

기씨조선과 위만조선의 수도는 평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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