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논문

태백산과 백두산

무극신 2023. 12. 18. 06:50

1. 서론

 

행인국의 위치를 비정하면서 이미 태백산이 백두산이 아님을 밝혔다.

 

여기서는 태백산의 위치에 대해 살펴보자.

 

태백산이 백두산이 된 것은 고려말 조선 사림의 분위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떠한 논리적인 근거는 없었다.

 

환단고기 중 태백일사는 조선시대 이암의 저술이다.

 

태백일사에서 인용된 삼한비기는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지정한 일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백두산은 백두대간의 조종으로 태백산은 당연히 백두산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태백일사도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본 것이다.

 

현재 우리 학계도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보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학계의 주장엔 어떠한 논리적 역사적 근거도 없다.

 

 

2. 백두산의 다른 이름에 대한 비판

 

중국 고전에서 보이는 산을 백두산으로 단정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 상황이다.

 

백과사전, 나무위키 등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나타나는 백두산의 다른 이름을 나열해 보자.

 

불함산(不咸山), 단단대령(單單大嶺), 도태산(徒太山), 백산(白山)등이 보인다.

 

불함산은 산해경에서 보이는 데, 불함산은 숙신국에 있다고 하였다.

불함산을 백두산이라고 하면 백두산 인근이 숙신국이란 말이 된다.

숙신국은 후에 읍루가 되었으며 읍루 아래 부여와 북옥저가 있다.

따라서 위치상 산해경에서 보이는 불함산은 백두산이 아니다.

 

단단대령은 낙랑군 동부의 경계로 단단대령 동쪽을 동부도위가 관리했다.

낙랑군은 조양시가 중심이니 단단대령은 북진시 인근의 의무려산이다.

백두산과 같은 큰 산에 고개란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도태산은 물길 남쪽에 있다고 한다. 물길에 있으므로 당연히 백두산은 아니다.

 

백산은 마자수의 발원지로

말갈 백산에서 나와 국내성 서쪽을 지나 염난수와 합해져 서남쪽 안시를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는데,

 

마자수는 요하로 보이는데 백산은 백두산으로 보이기도 해 정확하게 지리와 맞아 떨어지지 않아

원전에 대한 분석이 더 필요해 보인다.

 

상식적으로 고구려 도성(통화시) 인근에 말갈 부족의 거주를 허락했을까?

 

 

3. 장백산과 백두산 이름의 기원

 

백두산은 고려 광종 때 사서에 최초 보이므로

백두산 명칭은 통일신라 나아가 삼국시대부터 사용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장백산(長白山)은 여진 말로 '항상(또는 큰, ) 하얀 산' 이름을 한역한 것으로

발해 이후부터 여진이 살면서 사용한 이름으로 추정된다.

 

조선은 이성계가 여진과 가까이 지낸 때문인지 장백산과 백두산 이름을 혼용해서 사용하였으며,

 

현재 중국은 장백산만 사용하고,

북한은 백두산과 장백산을 혼용하며, 남한은 백두산을 전용으로 사용한다.

 

 

4. 태백산의 위치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을 묘향산으로 지정했다.

 

조선 시대엔 일치하여 백두산으로 비정하였다.

이런 분위기 하에서 환단고기 태백일사는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단정하였다.

 

그런데 환단고기 삼성기를 보면

환웅이 온 곳을 흑수와 백산 사이로 특정하여 기술하였다.

 

흑수는 흑룡강(아무르강)인데 백산을 백두산이라 하면 거리가 너무 멀어 위치를 특정하는 게 무색해진다.

 

이는 당신이 사는 곳을 물었을 때 한강과 월출산 사이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백산이 백두산이 아니라 흑룡강과 가까운 산이라 한다면 정말로 위치를 특정한 것이 될 것이다.

 

추모경에서 주몽이 북옥저를 정벌하고자 준비할 때,

숙신국의 왕이 서한을 보내어 만류하며 말갈에 대해 설명하는 구절 속에 태백산의 위치가 나온다.

 

말갈은 물줄기를 따라 근원을 옮기는데 멀리 상곡의 북쪽에서부터 구불구불한 물길을 따라 태백에 이르렀고 흑수를 잠식하였으며 동으로 바다에 서로는 북해(바이칼호)에 다다릅니다. 북해엔 흉노왕의 비밀 장원이 있습니다.

 

상곡은 장가구시를 말하니 말갈은 장가구시에서 후룬베이얼시까지 이동하고,

흑룡강을 따라 동해까지 그리고 서쪽으로 바이칼호까지 말갈의 활동 영역이 넓으며

바이칼호엔 흉노왕이 장원이 있어 말갈을 공격하면 흉노와 대립할 수 있음을

숙신왕은 주몽에게 넌지시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숙신왕의 설명에 따르면 태백산은 대흥안령산맥에 있으며 흑룡강에 가까운 곳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태백산은 지금 대흥안령 북단의 대백산으로 판단된다.

 

소수 부족민에 의하면 항상 눈에 덮여 있어 '흰 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태백산과 행인국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서

태백산은 북쪽을 향해 달리는 산으로 비서갑의 땅에 우뚝 서있다. 물을 뒤로 업고 산을 끌어 안고 있는데, 크게 둥그럽게 돌아 모이는 곳이 있으니 대일왕이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라 하였는데,

 

백두산은 압록강 등의 발원지로 물을 뒤로 업고란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흑룡강이 뒤에 흐르는 대백산이 형상에 더 맞지 않나?

비서갑은 부소갑이 송악(松岳)이므로 ?악이 될 것인데, 버드나무나 자작나무가 아닐까?

 

환웅 집단이 어떤 곳에서 이주한 집단이라면,

만주 지역 외에서 이주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지인 거주하기 좋은 노합하, 시라무렌강, 요하 등이 아닌

험한 백두산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흑룡강은 유목민족의 청동기, 철기 등이 전파된 교통로였다.

 

환웅 집단은 흑룡강을 따라 만주에 들어왔고

요서지역에 홍산 문화를 건설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고 백두산이 문화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백두산은 약 2,750m로 만주와 한반도에서 가장 높으며,

흑요석 생산지로 구석기 시대부터 이용되었으며,

홍산 문화와 동시대의 제사 유적이 발견되는 등

 

환웅시대 당시부터 백두산이 영산으로 신성시 된 것은 확실하다.

 

중국이 백두산 문화 유적을 조사하지 않고 있는데,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역사는 역사 그대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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