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계의 견해
비류국을 전문적으로 다룬 논문을 찾기 어려워서 다음 사이트 백과사전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다음 백과사전에 올라온 이 정도가 학계에서 언급되고 있다.
⓵ 동가강 유역(혼강)에 있었던 소국이다.
⓶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실교체는 주몽의 비류국 병합을 말한다.
⓷ 비류국의 지배층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이동해왔으나 주몽 집단보다 빨리 정착했으며 선주 토착세력으로 고구려 보다 우세했다.
2. 삼국사기 기록
⓵ 비류수에서 채소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사는 것을 알았다. 주몽은 사냥을 하며 그곳을 찾아 올라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⓶ 비류국 국왕 송양이 나타나 말하길 “과인은 바닷가 모퉁이(海隅)에서 후미지게 살아 군자를 보지 못했는데 오늘 서로 만나게 되었으니 그 또한 다행이 아니겠소? 그런데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보지도 않는구려.”
⓷ 주몽이 답하길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로서 모처에 도읍을 하고자 온 것이오.”
⓸ 송양이 말하길 “나의 선조는 여러 대에 걸쳐 왕이 되었소. 땅이 적어 두 임금이 있기 어려우니 당신은 도읍을 한 지 일천하므로 나에게 부용함이 어떠하오?”
⓹ 주몽은 송양의 말에 분노하여 말로 싸우거나 활쏘기로 기예를 겨루었는데 송양이 당해내지 못하였다.
⓺ 주몽 2년(기원전 36년) 여름 6월 송양이 나라를 바쳐 항복했다. 그 땅을 다물군(多勿都)이라 하고 송양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였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고 하는데 그리하여 그곳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
3. 비류국의 위치
1) 학계의 주장 비판
⓵ 비류국의 위치는 졸본과 가까운 곳이다.
삼국사기에 졸본은 비류수 하류에 있고 상류에 비류국이 있었다고 하니,
환인을 졸본으로 비정하는 학계가 동가강(혼강) 또는 부이강 상류에 비류국을 비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학계의 주장은 자가 당착에 빠지게 된다.
부이강 상류를 따라 올라가면 학계가 주장하는 제2현도군인 신빈민족자치현 영릉진과 가까운 곳을 통과한다.
학계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비류국은 제2현도군의 영역하에 있게 된다.
그런데 고구려를 건국한 그 해에 주몽이 비류국을 공격한다?
이제 막 건국하여 궁궐도 갖추지 못한 고구려가 현도군 영역 내의 비류국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이강 상류에 비류국을 비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혼강 상류인가?
혼강 상류를 따라가면 바로 통화시가 나온다.
인단 비류국을 통화시에 비정하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비류수가 혼강이고 비류국이 통화시라면 관구검 침입과 관련하여 모순된 기록이 있다.
관구검이 현도로부터 침입하자 동천왕이 비류수에서 관구검을 패배시켰다는 것이다.
비류수가 혼강이라면 동천왕이 관구검과 싸우는 것은 군사적인 면에서 맞지 않다.
혼강은 환인을 흐르므로 졸본이 환인이라면 수도에서 관구검 군대와 전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이강이 비류수가 되어야 하는데,
위에서 보았듯이 비류국을 신빈 영릉진 인근에 비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고구려 벽비에 유리왕이 비류에 도읍했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유리왕 때 국내성 천도를 말한 것이다.
학계에서는 국내성이 집안이라고 하므로 비류국이 통화시 집안에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고구려 벽비에 현도와 비류를 안정시켰다 하여 마치 비류와 현도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정리하면
군사학적으로 옛 수도인 환인(시조가 세운 졸본이므로)에서 전투를 할 수 없기에
비류수는 혼강이 아니다.
부이강 상류는 학계에 따르면 현도군 영역이다.
비류국은 현도군 영역이 아니었기에 고구려가 정복할 수 있었다.
유리왕은 비류에 도읍하였다.
학계에 의하면 국내성은 통화시 집안현이다.
그렇다면 비류국은 통화시에 있었고,
환인에서 통화시로 천도했기에 동천왕은 비류수인 혼강에서 전투가 가능했나?
학계와 같이 졸본을 환인으로 비정했을 때 결국 비류국의 위치가 통화시로 되어,
시조를 중요시하는 고구려에서 환인에서 관구검 군대와 전투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따라서 다시 비류국의 위치가 모호해지는 되돌이표와 같이 의문이 계속 반복된다.
⓶ 소노부에서 계루부로의 왕실 교체가 주몽의 비류 정복을 말한다는 것이 다수설이고,
태조왕 때라는 소수설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산상왕 때라는 유력설이 등장했다.
이 문제는 다음에 다시 다루겠지만 여기서 졸본이 계루부인지에 대해 일단 의심을 해보자.
⓷ 비류국의 지배층이 부여에서 이동해 정착한 선주 집단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고구려도 부여에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졸본과 모둔 등이 합해서 고구려를 만든 것이다.
기존 지역체에서 고구려가 출범한 것이지 지배층이 부여에서 이동하여 건국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비류국도 지역 집단으로 봐야 한다.
물론 아주 먼 선대에 송씨 집단이 어디에서 올 수는 있다.
그러나 송양이 말했듯이 누대에 걸쳐 왕이 된 이상 이미 지역에 정착하였다고 봐야 한다.
2) 비류국 위치 비정
비류국의 위치는 다물이란 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물은 옛 땅을 회복한다는 말인데, “옛 땅”이란 누구의 땅을 말할까?
고구려는 북부여를 계승하였다 하였고, 주몽 본인 스스로 천제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니,
천제는 소해모수를 말하며 소해모수가 거처하던 땅을 아들이 도로 찾았다는 뜻이다.
북부여는 길림시에 있었으니, 길림시를 주몽이 되찾았다는 말이 된다.
소해모수 사망 후 비어 있던 길림시를 비류국이 차지하였고 주몽이 되찾은 것이다.
따라서 비류국은 길림시 인근이 된다.
길림시 인근이고 졸본인 돈화시(둔화시, 敦化市)에서 가까운 곳은 교화시(자오허시, 蛟河市)이다.
비류수는 비류국에서 나온 물을 가리켜 통칭하여 부른 것으로 생각된다.
송화강과 휘발하, 교화강이 비류수라고 생각된다.
심양에서 무순을 통과하여 유하구시 화전시를 지나면 바로 비류국에 다가설 수 있고,
또는 심양에서 장춘까지 가서 길림을 통해 비류국에 접근할 수 있어
유리왕이 비류로 도읍했을 때 졸본보다는 수도 방어에 상당히 취약했다고 생각된다.
삼국사기엔 주몽과 송양이 만나고 1년 뒤에 송양이 항복한 것으로 나와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세한 것은 남당 박창화 자료의 하나인 추모경에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송양과 주몽이 만난 날 주몽은 보물을 약탈하였고,
이에 송양은 군사 5천으로 주몽을 공격하였으나 송화강과 모란강에서 대패하여 조공하기로 하였고,
다음해 여름에 대홍수가 나서 도성이 수몰되어 나라를 유지할 수 없어 고구려에 항복하고 말았다.
삼국사기는 소략하여 담긴 내용을 파악할 수 없어 조선에서도 이를 보완하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끝내 보완하지 못하고 말았다.
삼국사기 해석은 암호 풀기와 마찬가지이다.
추모경이나 고구려사략 같은 박창화 자료나 환단고기 등이 없다면 정말 엉뚱한 결론을 냈을 것이다.
숨어 있는 사서가 더 발굴되기를 기원한다.
※ 삼국사기 해석
⓵ 주몽이 비류국을 공격하는 것은 명분이 없기에 채소 운운하며 사람을 찾는 다는 핑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류와 졸본은 인접국으로 주몽은 몰랐다 할지라도 소서노가 몰랐을 리 없다. 추모경에 의하면 졸본과 비류의 전쟁에서 졸본이 패하여 소서노의 언니인 관패가 송양에게 인질이 되었다고 한다.
⓶ 바닷가도 아닌데 왜 송양은 바닷가 모퉁이에 있다고 하였을까? 바다(海)는 넓은 들을 뜻하기도 하니 부여 넓은 땅 모퉁이라는 의미도 되고, 송화호(강)가 넓기에 바다와 같은 송화호(강) 모퉁이라는 뜻일 수 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보지도 않는다는 말은 다음이 생략된 것으로 보이는데 추모경에서 “주몽을 사칭하면서 내 처제를 속여서 혼인하고 장인의 나라를 차지했다”라는 비난이 있는데 이것이 원문에 가까울 것이다.
⓷ 천제는 하느님이 아니라 소해모수를 말한다. 여기서 제(帝)를 사용한 것에서 부여는 중국 한나라와 같이 황제국이었음을 의미한다. 추모경을 보면 왕은 부여(후에 비리로 국호 변경)뿐이었으나 동부여가 왕을 칭한 후에 행인, 황룡, 순노 등도 모두 왕을 자칭했다고 한다.
⓺ 추모경에 의하면 비류국을 탕동, 탕서, 탕북으로 3군으로 나누었으며 탕동에 해모수 행궁이 있어 탕동을 다물군으로 하였다고 한다. 행궁이라 하였으므로 길림시가 아닌 다른 곳에 본궁이 있거나, 길림시에 본궁이 있고 현 비류국에 송화강 가에 임시 행궁이 있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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